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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눈을 감듯.
지난 여름 수액처럼 솟던 꿈
아직 남아도는 푸른 피와 함께
땅 속으로 땅 속으로
오래 전에 죽은 용암의 중심으로
부끄러움 더러움 모두 데리고
터지지 않는 그 울음 속
한 점 무늬로 사라져야겠네.
―최승자,「가을의 끝」,『이 시대의 사랑』(1981), 문학과지성사
봄, 여름, 탄생과 성장으로 바쁘게 살았을 ‘풀꽃’의 존재를 일깨워주는 ‘바람’조
차 저문다. ‘풀’은 바람이 있어야만 흔들린다는 속성을 끊임없이 확인하면서 살
아왔는지도 모른다. 인생은「서시」의 ‘잎새에 이는 바람,’ ‘별에 스치는 바람’처럼
현 존재를 일깨워주는 무엇인가와의 끊임없는 교류를 통해 살아 있는 모습을 갖
춘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바람’은 또 세월을 의미하기도 한다. 조락의 계절 가을은 죽음으로 가는 길목
이다. 저무는 시간이다. 가을이 저물자 ‘풀꽃’이 눈을 감는다. 거대하게 보자면 한
없이 큰 것이 인생이지만 노년은 ‘풀꽃’ 만한 생명이다. ‘풀꽃’이 눈을 감듯 우리
삶도 그렇게 저물 것이다.
저무는 순간 ‘풀꽃’은 지난 날을 회상한다. 나이 들수록 회상이 많아지듯 젊은
날의 영화를 추억처럼 반추한다. 풀꽃에게도 추억처럼 간직한 ‘꿈’이 있었고, 온
갖 사물과 교감하며 살던 시절이 있었다. 그에게는 또 ‘아직 남아도는 푸른 피’가
있으나 아낌없이 그것들과 더불어 ‘땅 속’으로 간다. 땅 속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
는 것은 이제 더 이상 활동하지 않는 ‘용암’이지만, 그의 곁에 일생 동안에 걸쳐
자기의 몸에 묻게 된 ‘부끄러움,’ ‘더러움’들은 눕히고자 한다.
‘죽은 용암’이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젊음이다. 돌아갈 수 없고 살
려낼 수도 없기에 지금 와서 다시 터뜨릴 수가 없다. ‘터지지 않는 그 울음’이 있
는 곳은 그의 존재가 아직 이름을 받기 이전의 상태인 태, 곧 자궁의 세계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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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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