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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끝’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은 탄생 이전의 세계인 원초적 생명의 세계
를 지향한다. 그러므로 ‘한 점 무늬’로 사라지겠다는 결의는 탄생 이전의 새롭고
다른 완성된 존재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풀꽃’의 세계에 시적화자의 전 생애를 투사하고 성찰함으로써 다시 원초적이며
순수한 생명의 세계로 회귀하고자 하는 시적 화자의 기원은 결코 세속적이지 않다.
엄연히 탈속적이면서 존재로부터의 일탈이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
고 가는 ‘낙화’의 뒷모습이 아름답듯이 서정주체는 때가 되면 모든 세속적인 집착
을 버리고 ‘메마른 신경’을 스스럼없이 놓아버림으로써 존재를 완성한다.
삶의 끝을 마무리하는 과정이 이렇듯 대범하여, 자기 삶을 데리고 근원적 생명
의 세계로 회귀하겠다고 한다. 이러한 인식은 티 없이 맑은 세계를 지향하는 순
수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으며, 늙을수록 더 많은 것에 집착하고 이를 끝내 버리
지 못함으로써 비난과 자멸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세속인들에게 좋은 성찰의 본
보기가 된다.
황지우의「雪景」은 눈이 온 경치를 수의에 비유하면서 모든 물상들이 눈에 덮
인 고요의 상황을 죽음이라고 일컫는다. 그러면서 죽음의 가치를 새롭게 해석한다.
날 새고 눈 그쳐 있다
뒤에 두고 온 세상,
온갖 괴로움 마치고
한 장의 수의에 덮여 있다
때로 죽음이 정화라는 걸
늙음도 하나의 가치라는 걸
일러주는 눈밭
살아서 나는 긴 그림자를
그 우에 짐 부린다
―황지우,「雪景」전문,『게 눈 속의 연꽃』(1990), 문학과지성사
시적화자는 어느 날 잠에서 깨어 희고 깨끗한 눈의 세계를 맞이한다. 간밤의
꿈이었을까, 아니면 살아온 날들이 꿈처럼 느껴진 것일까. 지순한 ‘눈밭’이 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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