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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웠던, 그러나 밤새 깨끗이 정화된 삶의 현장으로 느껴진 다. 그리고 그것은 추
억처럼 지금 눈 속에 덮여 있다. 늙어간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비애요 부정하고
싶은 현실이지만, 눈 앞에 펼쳐진 설경은 늙음을 하나의 아름답고 순수한 가치
로 인식하기에 충분한 색깔을 지녔다. 시적화자는 눈의 순결하고 깨끗한 이미지
에서 곱게 탈색된 노인의 백발을 연상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두렵게만 느껴
지던 늙음에 대한 인식이 그 동안 살아온 삶의 궤적 속에서 깨끗하게 극복되는
여유와 충만을 느꼈는지도.
시적화자는 눈으로 덮여 있는 세상을 통해 ‘수의’라는 죽음의 이미지를 떠올리
며 눈이 오기 전의 세상을 시간적으로 응시한다. ‘뒤에 두고 온 세상’이란 지금까
지 살아온 삶의 궤적이며,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옛길이다. 하얀 수의에 덮여 있
는 죽음을 ‘정화’로 인식하는 것은 오랜 인생 경험이 알려 준 삶에 대한 깊은 투
시의 결과다. 죽음을 ‘정화’로 보는 차원이나 ‘늙음도 하나의 가치’로 보는 것은
감성적 논리보다는 이성적 논리가 앞선 것으로 곱고 깨끗한 노년을 지향함으로
써 노추를 스스로 경계하는 인식의 세계를 보여준다.
김춘수의「順命」은 죽음을 또 하나의 다른 각도에서 인식한다. 매미와 잠자리
의 생태를 통해 존재로부터의 스스럼없는 일탈을 가볍게 그려낸다. 그러나 실상
손길에 담긴 무게는 그리 가볍지 않다.
처서 지나고 땅에서 서늘한 기운이 돌게 되면 고목나무 줄기나 바위의 검붉
은 살갗 같은 데에 하늘하늘 허물을 벗어놓고 매미는 어디론가 가 버린다.
가을이 되어 수세미가 누렇게 물들어 가고 있다. 그런 수세미의 허리에 잠자
리가 한 마리 붙어 있다. 가서 기척을 해봐도 대꾸가 없다. 멀거니 눈을 뜬 채
로다. 날개 한 짝이 사그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내 손이 그의 몸에 닿자 긴 꼬
리의 중간쯤이 소리도 없이 무너져 내린다.
―김춘수,「順命」 전문,『현대시』(1992.9)
한 번 태어나 7일간 울기 위해 7년을 애벌레 상태로 견뎌내는 매미의 끝은 어
떠한가. 한 마디로 떠날 때가 되면, 스스럼없이 자기가 입고 온 허물의 벗고 가 버
린다. 관찰자요 서정주체인 ‘나’의 지극히 객관적인 어조로 보아 매미의 그런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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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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