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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이 떠든다면, 이런 곳에서 진심으로 배우
어떻게 극복해 가고 있는가?
거나 가르치는 것이 이루어지겠는가? 배움이나
배움의 공동체에서 배움이란 고도의 학
가르침은 탁월성의 추구라고 말할 수 있다. 배
력신장과 지식을 추구하는 것인가, 창의적
움이라는 것이 항상 즐거운 일만은 아니다. 힘
이고 생산적인 배움과 앎을 추구하는 것인
든 일이기도 하다. 그러한 어려움을 뛰어넘을
수 있는 인내력을 기르고 결국 뛰어넘는 것, 이
이항대립적 사고를 극복해야
것이 하나의 희망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과제를 해결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
을 아이들이 뛰어넘을 수 있도록 수업을 설계해
두 번째부터 답변하겠다.
야 한다.
위에서 말한 지식추구와 창의적인 앎의 문제
정리하면, 첫째는 모든 아이들이 다 배울 수
는 대립적인 것이 아니다. 교육에 대해 여러 가
있는 단계를 설정하고 이를 기초로 점프할 수
지 이항대립적인 견해가 있다. 예를 들면 지식
있는 단계를 함께 설정하는 것, 이것이 요점이
이냐 아이들의 상상력이냐, 의미냐, 정보를 찾
다. 점프를 할 때에는 실제로 C 집단의 아이들
는 것이냐 하는 것인데, 이런 대비는 잘못 되었
은 이해를 못하고, 못 따라갈 수도 있다. 그러나
다고 본다. 교사 중심이냐 아동중심이냐, 개념
문제는 없다고 본다. 못하는 아이들이 잘 하게
중심이냐 정보중심이냐 하는 등 배움을 놓고 이
되는 것을 보면 서서히, 점진적으로 성장하지
항대립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한국이나 일본의
않고 어느 순간 깨치는 과정을 거친다. 어느 순
한 경향인 것 같다. 유럽이나 미국에는 이러한
간 깨치는 이유는 몰랐던 부분이 어느 날 연관
논의가 없다. 이것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
되기 때문이다. 항상 아는 것, 쉬운 것만 경험해
하다고 생각한다. 왜 이러한 경향이 한국이나
왔다면 이러한 깨침의 순간은 오지 않았을 것이
일본에서 강할까? 일종의 식민지주의적인 현상
다. 못하는 아이들이 못 따라 간다고 해서 높은
이라고 볼 수 있다. 식민지경험이 있는 나라에
수준의 과제가 소용없는 것이 아니다. 어느 순
는 이항대립적인 사고방식이 남아있다. 일본에
간, 깨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이 두 가지 협동
서도 이항대립적 사고는 마찬가지다.
“지식이냐
과정을 수업에 넣어야 한다.
의미냐”라고 했을 때 둘 다 중요하다고 말해야
한다. “교사냐 아동이냐”라고 했을 때도“교사
질문 2
도 아동도”라고 해야 한다.
“과학중심이냐 생활
배움의 공동체가 경쟁적인 입시 제도와
중심이냐”
에서도 또한 동일하다. 어떻게 보면
충돌하는 면이 있는데, 이를 일본에서는
신식민지적 사고의 한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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