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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스승릴레이:예순세번째
내지 않고 각자 책을 읽습니다. 소리 내어 책을 읽어주지 않아도 되니 몸의 수고가 덜어졌지만, 대신 아이들
과 같은 책을 읽어도 그 책에 대한 감상이나 기억의 밀도가 이전에 비해 확연히 낮아진 것을 알 수 있습니
다. 이 책을 읽으며 새삼 소리 내어 함께 책을 읽던 시절이 애틋하게 다가왔습니다.
질병의 치료책으로 읽기를 처방한 그리스 의사들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고대에는 읽기가 힘든 운동으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이반 일리치는 후고의 읽기 활동을 포도밭에서 포도 열매를 수확하는 과정으로 묘사합
니다. 이때 “페이지의 행은 포도를 지탱하는 포도 시렁의 줄”이 됩니다. 사실 소리 내지 않고 책을 읽는 행
위는 “고대에도 이따금씩 이루어졌지만 그것은 묘기”에서 알 수 있듯이, 후고가 살던 12세기 수사들에게 읽
기는 입으로 소리 내는 활동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대학 이전의 수도원의 모습을 “중얼거리고 우적거리는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묘사하는 자료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렇듯 수사의 읽기는 “주마등 같은 면은 훨씬
덜하고 신체적인 면이 훨씬 강한 활동”입니다. 책에서 인용한 마르셀 주스Marcel Jousee의 연구에 따르면
“기억이란 그 발화가 묶여 있는,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일련의 근육 패턴을 촉발”시킨다고 하는데, 아이들
에게 소리 내어 동화책을 읽어주던 시절의 기억이 유독 강한 힘을 지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
습니다.
「텍스트의 포도밭」을 읽으면서 라틴어 어휘 읽기와 주석 읽기가 참 재미있었습니다. 후고는 “라틴어로 표
현하지 않으면 구술할 수도 없고 글을 쓸 수도 없고 마음의 가장 깊은 움직임을 정리할 수도 없었던” 시절
에 지혜를 향한 읽기를 수행한 인물입니다. 이반 일리치는 「디다스칼리콘」을 해석하면서 후고의 생각이 고
스란히 담긴 어휘들을 라틴어 그대로 옮긴 후 그 깊은 의미를 이해하기 쉽게 알려주는데, 이 낯선 어휘들을
소리내어 읽어보고 손으로 써보는 활동은 특히 새롭고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또한 풍부한 주석을 곁들여
읽으면서 문장의 의미를 곱씹어 보는 과정에서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에서 기쁨을 찾으라고 권”하는 후고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셋.만물은잉태중이다
자연 자체가 책이며 인간이 만든 책은 그 유사물입니다. 인간이 만든 책을 읽는 것은 산파의 행동입니다. 읽
기는 추상화의 행동이기는커녕 오히려 육화의 행동입니다. 읽기는 출산을 거드는 육체적인 행동, 몸의 활
동으로, 순례자는 페이지들을 거치며 만나는 만물이 의미를 낳는 것을 목격합니다.
“모든 자연은 의미를 잉태하고 있으며, 우주 만물 가운데 불임인 것은 없다.”라는 후고의 말을 읽기에 적용
해 보면, 책을 읽는 경험을 통해 읽는 이는 “의미를 낳으려고 그곳에서 기다리는 피조물”을 만나게 됩니다.
이것은 포도밭에서 시렁을 따라 포도를 수확하는 과정과 일맥상통합니다. 페이지에 귀를 기울이며 참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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